2019년 이전까지 내 돈으로 사 본 책은 전공책(어휴 전공책은 꼭 사는 편이라 돈이 무지하게 많이 깨졌다. 되팔지도않음..소중해...)제외하고는 계한희 디자이너의 `좋아보여`와 박웅현CCO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라` 딱 두 권. 깔깔. 패션 머천다이저가 꿈이었던 이혜승이 산 책이다. 공부빼고 다 재밌던 시절. . .
최근 책을 꽤 많이 샀다. `82년생 김지영`, `대도시의 사랑법`,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작은 아씨들`, `태도의 말들`. 말 바보 치료법으로다가 휴학 기간동안 책읽기를 도전했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영화보는 대신 책을 읽는 것으로 대체한 것만으로도 참 뿌듯하다.(아 물론 여전히 영화도 많이 본다) 영화에서도 물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지만, 책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수용 속도를 내가 정하느냐 따라가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또 영화는 끝나고나서 여운을 즐겨야하는 반면, 책은 한 문장마다 가끔은 한 단어에 꽂혀서 곱씹을 수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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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읽은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 3인류. 5권까지 읽고, 마지막 6권은 읽지않았다. (드라마도 마지막 화는 잘 안보는 나..) 이 책을 가장 먼저 선택했던 이유는 낡고 오래된 기억에서 기인했다. 약 10년전, 코엑스를 지나다 포교하시는 분들께 붙잡혔다. 대학교 과제 설문 조사중이니 도와달라는 그들의 간절한 요청에 순진한 나는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천국을 믿으세요?" "네!"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 "불교요!"(그냥 할머니가 불교라 불교였다. 지금은 무교임) "불교인데 어떻게 천국을 믿어요..?" "O ㅏ ! 제가 몇일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타나토노트를 읽었거든요?!?! 그 책을 읽고 사후세계에 대해 고민하게되었어요!!!!" 나의 엉뚱한 대답에 본의아니게 퇴치된 그들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서야 알게된) 남다른 포교 퇴치 능력을 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감사하며 집어든 제 3인류라는 기나긴 서두. 이 얘기 내가 딱 한 명한테만 했었는데, 벙찐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껄껄
제 3인류는 9-10월에 읽어서, 내 기억 속에 권 마다의 경계가 희미하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호모 기간티스(거인)가 호모 사피엔스(현재 인류)를 창조하고 사라지며, 또 다시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메타모르포시스(에마슈)를 창조하는 것.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 신을 자처하며 에마슈를 교육하는 것이 참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고 우리네 신이 된 것을 모방한 게 아닐까. 무신론자에 가까운 나라서, 인간이나 에마슈나 본인의 삶은 신이 아닌 스스로가 주관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마슈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부분이다. 에마슈 중 사고로 인해 인간의 세상을 목격한 에마109가 샤오제를 구출하러 간 상황에서 샤오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가 뭐죠?" "나는 개인적인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몰라요." 성숙한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은 틀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며 성장한다. (물리적으로 성장할 뿐.) 보고 자란 것이 세상의 전부이기때문. 샤오제처럼 극단적인 상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그 '안정적인' 루트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삼수를 했고(물론 삼수를 하며 얻은 것도 많았다) 내가 보고 자란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고 있다. 다 좋다 이거야. 근데 문제는 이거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나 뭐먹고살지? 뭘 해야하지? 뭘 잘하지? 뭘 해야 내가 행복하지? 라며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버린다.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 하라는 공부만 하고 가라는 대학에 왔으니, 개인적인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모르는 샤오제랑 다를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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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다. 드디어. 앉은 자리에서 술술술 읽었다. 책 전체에 밑줄을 치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짝궁이 지영이를 좋아해."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도대체 그 놈의 원래는 어디서 시작된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원래'이다. 난 원래 이래. 세상이 원래 그런거야. 진차 꼰대같고 별로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할많하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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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만 쓸래. 내일도 일해야하니까. 안녕.